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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네시대학 면역학부 유학생활기

1988년초 미국의 테네시대학 면역학부에서 1년동안 객원연구원(visiting research fellow)으로 오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심사숙고 끝에 혼자 도미하여 그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가족들에게도 미국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직장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부간에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 먼 훗날 서로가 한가해 지면 같이 해외여행할 기회가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1988년 8월말 '같이 가자'는 철부지 5살된 큰아들 녀석을 김포공항에서 달래놓고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여러 가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고민과 불안들이 얽혀져서 장시간동안 비행기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어느 덧 비행기는 테네시주 멤피스에 도착하였다. 여태까지 남이 해주는 밥만 먹다가 스스로 식생활을, 그것도 외국에서 해결하려하니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었다.

9월초 그 대학의 여러 사무실에 등록하러 다니느라 바빴었는데, 서울올림픽이 그곳에서도 관심거리의 하나였다. 학교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위치에 아파트가 있었는데 개막식을 비롯한 경기장면을 보지 않을 수 없어 부랴부랴 TV를 구입해 왔다. 미국시간으로 9월 16일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국제전화했더니 집식구들과 똑같은 화면을 보고 있어 서울의 어느 다른 동네의 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만 같다.

면역학부에서 자가면역성 관절염의 동물모델에 관계된 여러 실험을 하고 있는 연구팀에 속하게 되었는데 그 연구팀의 구성원들은 출신국가도 세계 각처이고, 전공도 각양각색이었는데 그 때까지 한국에서 단일민족의 환경에서만 지냈던 필자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들게 하였다.

여하간 소액의 장학금의 성격으로 봉급을 받는 연구원이었기 때문에 의무도 약간 있어서 실험적으로 유발된 동물의 관절염의 광학현미경적 관찰 및 전자현미경적 관찰이 주된 임무였고, 관절연골조직에 대한 새로운 면역조직화학적 시도가 또 다른 임무의 하나였다.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의 업무를 보는 것도 큰 경험이 되었는데 예를 들면 소(牛)의 무릎관절연골을 파쇄하여 콜라젠을 추출하는 방법, 콜라젠을 항원화하는 방법, 그 항원을 실험동무리에 주사하는 방법, 일단 주사된 실험동물을 관찰, 기록하는 방법, 그 동물에서의 항체생성 역가를 평가하는 방법, 실험동물의 도살시기 결정기준, 그 동물에서 생성된 항체를 추출하는 방법 및 콜라젠 생성 유전자에 대한 연구 등, 배우고 익히고 싶은 기법(技法)들이 너무나 많아서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랐었다. 또한 한국에서 필자의 주업무인 병원에서의 병리과 업무, 즉 진단적 병리학 공부를 무시할 수 없어 연구팀의 장에게 간청하여 주위 병원의 병리과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부검 집담회, 육안조직 집담회, 현미경표본 집담회 등에 참석할 수 있도록 되어서 여간 기쁘지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차도 구입하고 친한 사람들도 생기고 하여 상당히 미국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가구가 하나둘씩 필요하게 되었다. 10개월 후 귀국시에는 헐값에 팔든가, 버리든가 해야했으므로 값이 쌀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고품 소파는 마음에 안 들어 미숙한 솜씨이지만 직접 만들어서 쓰고 버리기로 결정하였다. 나름대로 설계를 하여 제재소와 철물점이 합쳐져 있는 Hard-ware 가게에 가서 기계톱으로 절단하여 못을 박았더니 훌륭한 평상이 되었고 그 위에 유아용 매트레스와 의자용 방석을 놓으니 45달러밖에 안들여서 그럴 듯하고 편리한 소파로 사용하다가 귀국할 즈음 그 당시 갓 도착한 한국인 의사에게 물려준 추억이 있다.

세월이 지나 여러 일에 상당히 익숙해져서 이젠 무언가 그 연구팀을 위하여 봉사하고 공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에는 귀국을 몇 달 앞두고 있었다. 그 때에는 왜 그리 1년이 빨리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1989년 8월말 귀국후 그 당시 배웠던 지식과 기법을 응용하여 좀 더 기초과학적인 분야의 실험실을 계획하고 한가지씩 차근차근 실천해 보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우물안 개구리였던 필자가 넓은 미국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끔 도와준 동료 병리의사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1990년 5월호 삼진제약 사보 삼진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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