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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벙어리 냉가슴

내가 좋아하는 Y 여류 수필가가 쓴 '외삼촌의 깃발' 이라는 작품이 있다. Y 씨의 외삼촌인 농아자 목수(木手)의 가정에 관한 내용을 다룬 수필인데, 그 농아부부의 자녀들은 중학생으로서 부모들의 수화통역사(手話通譯士)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환자들은 의사들 앞에서 자기가 아파하는 내용을 얘기라도 실컷하면 아주 후련해 한다. 그런데 만약 농아자가 아프면 의사들은 어떻게 그 내용을 알아 차릴 수 있을까? 대개의 의사들은 수화를 해독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의학공부를 한 사람들에게 농아자들을 위하여 수화까지 공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화통역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말 못하는 서러움 , 즉 벙어리의 냉가슴도 한 번 쯤은 느껴 보아야 진정으로 그들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개의 벙어리는 청각장애로 부터 시작된다. 일단 귀로 소리를 못 듣게 되면 , 그와 똑같이 흉내내는 말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장애자들에게 보다 따뜻한 애정을 가져 보자는 취지아래 「1일 장애자 체험」과 같은 권장할 만한 행사도 개최되고 있다. 나에게는 2주일 동안 듣기는 잘 했지만 말을 못하여 '벙어리의 냉가슴'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

1984년 강남성심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9월 말 경에 C 원장님께서 "자네, 일본 출장 좀 다녀 오지" 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일본여행의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그 때엔 병원에 지금의 임상병리과와 해부병리과가 갈라지지 않았었다. 두 과의 업무를 임상병리과에서 중복해서 수행하였다. 과내의 생화학부에 혈액화학자동분석장치가 도입될 예정이었는데, 일본의 S 회사의 기계가 선정되었다고 하였다. 일본의 S 회사에서는 고가의 기계를 선정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 기계를 다룰 사람을 모셔다가 일본의 각 대학병원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 현장을 직접 확인시켜 준다하니 , 일본에 가서 그 기계가 어느 대학병원에 설치되어 있는가 또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오는 것이 C 원장님께서 나에게 준 일본여행의 임무였다.

나는 일본어를 배우려는 열의는 별로 없다. 영어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병리학교수들과는 영어로 의사가 잘 통하므로 구태여 일본어까지 더 배울 필요가 없다. 나는 비교적 잘 하고 있는 영어회화의 향상에 일본어 공부가 걸림돌이 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기 때문이다. 일본어식 영어발음은 너무나도 이상해서 이런 식의 영어발음을 싫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뜨거운 커피를 '홋도 고히(hot coffee)', 맥도날드 햄버거를 '마구도 나루도 한바가', 31 아이스크림을 '사데이 완 아이수 구리무' , 컴퓨터를 '곤비우따' 라고 하고 있다. 더구나 병원에서 매일 열리고 있는 컨퍼런스( Conference : 의사들이 환자의 진료를 잘 하기 위하여 하는 회의)를 '기얀파란수'라고 하는데에는 아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일본식 영어를 구사하다가는 잘 진행되어 가는 영어회화의 공부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출장을 가더라도 영어만 쓰기로 했다.

1984년 10월 15일 (월요일) 오후 1시에 도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S 회사와 미리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는 서울의 삼성동 공항 터미날에 해당되는 도꾜 하꼬자끼 도시 공항 터미널이었다. 나리따 공항에서 그 터미널까지는 혼자 알아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오라고 하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 S 회사의 이름이 크게 쓰여진 노란색의 쇼핑백을 들고 있으면 , 그 회사의 직원이 나를 알아볼 것이고 , 그 다음부터는 안내에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쇼핑백을 들고 터니널 건물의 3층 , 2층 , 1층 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 날 좀 알아봐 주십시오' 해 보았지만 결국엔 도꾜 공항터미널 청사를 다 헤매고 다녀서 지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버스 하차장으로 다시 와서 S회사 쇼핑백을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1시간 반 쯤 지난 후 시미즈 (淸水)라는 청년이 자기가 그 회사의 직원이라며 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늦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였다. '왜 그리 늦었냐'고 항의도 하고 싶었으나 속마음으로는 시미즈 씨가 구세주처럼 반가웠다. 예약해 둔 호텔에서 계속 지내면서 예정되었던 대학병원을 돌아 보게 되었다.

첫주 금요일 (84년 10월 19일 ) , 저녁때 좀 피곤하였다. 그러나 이미 예정되어 있던 부장급 간부사원과의 저녁식사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식사하면서 술도 먹게 되었는데 일본인들의 음주문화(飮酒文化)가 한국인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술을 같이 마시는 상대방의 술잔에 첨잔(添盞)을 하여 항상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예의란다. 우리나라에서는 술잔의 밑바닥까지 비워야 또 한 잔을 딸아 주어 대개 술을 몇 잔 먹었는지 계량을 할 수가 있으나 , 술잔을 가득 채워 놓으니 마신 술의 양을 알 수가 없었다. 술의 종류도 한국에서 마시던 술이 아니었으므로 , 알코올 도수도 잘 몰랐다. 2차로 가라오께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 맥주를 더 마셨기에 '여기는 일본'이라는 긴장감도 다 없어졌다. 회식이 다 끝나고 각자의 방향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지하철 정거장으로 4개만 가면 되었으므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하철 속에서 그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누가 잠을 깨워 일어나 보니 지하철 회사 직원이 나보고 차에서 내리라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도꾜를 서울로 비교하면 서울의 2호선 지하철 처럼 야마노떼 선이라는 순환선인데 순환운행을 다 끝나고 서울의 용답역 처럼 차고로 들어가기 직전의 역이었다. 늦은 밤에 지하철에서 내려서 택시를 탈 때까지 손짓하고, 발짓하며 많은 고생을 했다. 일본인들과 영어로의 의사소통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래서 먹고 배설하고, 타고 다니며, 걸어 다닐 때 써야 하는 간단한 일본어는 배우기로 했다.그외 어려운 일본어는 종이와 볼펜을 갖고 다니며 해결했다. 종위위에다 한자(漢字)로 쓰고 '구다사이(해 주시겠어요?)', '오네가이 시마스(부탁합니다)' 또는 '도꼬데스까(어디입니까?)' 로 해결하였다. 그 예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어디입니까? ' 라고 묻고 싶을 때에는 '朝食 可能 食堂' 이라고 써 놓고 ' 도꼬데스까' 라고 물으면 일본인들은 잘 대답해 준다. '반듯하게 몇 m쯤 가서 왼쪽 또는 오른 쪽으로 구부러 져라 ' 고 말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말 속에서 반듯하게 (마??우), 왼쪽(히다리), 오른쪽 (밍이)의 단어만 포착하면 대충 짐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이 첫 일본여행 기간 동안에 나는 청각장애자와 언어장애자들의 서러움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러나 나의 귀는 잘 들리고 있었고 또 한자를 써가며 필담(筆談)을 할 수 있었기에 그리 심한 정도의 벙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불편함이 대단하였는데, Y 씨의 외삼촌처럼 정도가 심한 농아자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서 이런 농아자들에게 적절한 생활안내나 병이 생겼을 때의 진료를 대비해서 Y 씨의 외사촌 동생들처럼 수화통역사(手話通譯士)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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