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is responsive to your Click


INDEX

형부와의 결혼 준비

'고스트 맘마' 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상당한 인기를 끌어서 많은 관람객들의 손수건을 적시게 했다. 이 영화속에서는 젊은 부부가 한 젖먹이 아들을 기르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부인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그 죽은 부인은 유령(고스트)으로 나타나 남편의 일에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 도와 주다가 나중에는 자기 대신에 괜찮은 (?) 여자를 남편의 후처(後妻)로 만들어 준다는 줄거리가 그 기본이다.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스토리를 만들어준 환자 자매가 있다. 젊은 부부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소꼽놀이처럼 행복한 살림살이를 하다가 부인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일 때 , 그 여동생은 언니의 사후(死後)에 언니의 자리로 들어가 형부와 조카딸을 보살피려 했던 갸륵하고 건강한 여성이 있다. A 씨의 처제 R 씨이다. A씨는 나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예비역 대위인 L 씨의 막내동생이다. A 씨는 Y대를 졸업하고 S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엘리트 사원이다. A씨의 부인인 H 씨도 E대 음대 피아노과를 졸업한 재원 (才媛)이다.

이 H 씨(1968년생, 당시 만 25세)가 윗배가 살살 아프고 묵직한 느낌이 든다고 하면서 1993년 10월 27일 나를 찾아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있는 가장 흔한 증상이어서 나는 ' 별 것 아니겠지, 아마 만성위염일거야' 라는 임프레션( Impression : 의사가 환자를 본 즉시 각종의 검사를 시행하기 전에 생각하는 초기의 추측진단)으로 위내시경 전문의사인 K박사에게 H씨의 진료를 의뢰하였다. 며칠 후 K박사가 시행한 위내시경적 관찰 소견은 ' 조기위암 제 II-C 형 일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 그래서 K박사는 내시경을 통하여 2mm 짜리 위점막조직 샘플 8개를 해부병리과에 접수시켰다. 그로부터 이틀 후 , 나의 현미경 스테이지에 올라온 H 씨의 슬라이드에서 나는 아주 뚜렷한 암세포들인 인환세포군 (印環細胞群 : signet ring cell group)을 확인하였다. 이 인환세포는 세포의 모양이 옛날 로마시대에 옥쇄로 쓰던 반지와 도장을 겸한 인환 (印環 :signet ring)을 닮았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는데, 정상조직에는 없고 암조직에서만 존재하는 세포이다. H씨의 내시경적 조직검사의 진단은 위암으로 확진되었다.

그 후 , K박사와 나는 H 씨에게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려 줄 것인가 알려주지 말 것인가? 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10개월된 젖먹이 딸을 둔 25세의 젊은 엄마가 위암이라니-----. 결국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로 결정하였다. 조기위암이므로 환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치료에 호응하라는 의도였다. 이 조기위암환자가 적극적으로 치료에 응하면 5년 생존율은 90% 이상이라고 병리학 교과서에는 쓰여져 있다.

조기위암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H 씨는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의논하기 위하여 여러번 나를 찾아 왔다. 나는 우선 위절제수술을 받고, 그 후 항암화학요법에 응하라고 권해 주었다. 위절제수술은 일반외과 L 교수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끝났다.( 93년 11월 10일 ) H 씨의 절제된 위(胃)와 주변조직의 조직검사는 해부병리과장인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위의 일부인 위각(胃角 : gastric angle)에 약 2x2cm 넓이의 살짝 파여진 병변(病變) 부위가 관찰되었다. 그 부분 전체와 위주위(胃周圍)의 연조직(軟組織)에서 만져지는 림프절을 현미경 표본 슬라이드를 제작하라고 과원들에게 지시하였다. 며칠 후 현미경 표본 슬라이드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내가 내린 최종진단은 [ 조기위암 II-C 형, 인환세포로 이루어져 있음 , 점막층 및 점막하층에만 국한되어 있음, 수술적 변연부에는 암세포 없음 , 위주위 연조직에는 36개의 림프절 중 9개에서 전이(轉移)되어 있는 증거가 발견됨 ] 이었다. 림프절 전이 증거만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H 씨는 자신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무척 알고 싶어 했다. 그 때마다 나의 대답은 ' 당신과 같은 사람 100 명을 모아 놓았을 때 , 90명은 5년 이상을 살고 , 10명은 5년이내에 죽는다.' 였다. H 씨는 자기가 90명에 들어갈 것인가, 10명에 들어갈 것인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느냐고 다그쳤다. 그러나 이러한 현명한 물음에 모든 의사들은 바보같은 대답인 '아직 모른다' 라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날 , H 씨의 병간호를 열심히 해주던 여동생 R씨가 나에게 왔다. R 씨는 당시 22세(1971년생) 였는데 , S 여대를 갓 졸업하고 모 회사에 다니는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이었다. 나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만약 언니가 죽더라도 자신은 형부의 후처(後妻)가 되어 형부를 진정으로 사랑할 것이고, 사랑하는 젖먹이 조카딸을 티없이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여동생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쩌면 그리도 자매간의 정이 도타울까 ! 나는 이런 처제를 둔 A 씨가 몹시도 부러워졌다.

형부와 처제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단히 좋은 관계로 인식되어 있다. 나의 처는 친여동생은 없다. 그러나 사촌 여동생을 친여동생처럼 생각하여 만나기만 하면 그 동안 가슴속에만 있던 못 다 했던 얘기들을 하느라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가끔은 나도 이 얘기잔치에 참여하는데 그 내용은 항상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라 내가 가장 먼저 지쳐서 혼자 잠자리로 향하는 적이 대부분이다.

몇 달이 지나 H 씨의 위절제술의 수술상처는 다 나았고, 시행된 항암화학요법도 다 견디어 냈다. 한창 항암제가 고농도로 투여될 때에는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했고 얼굴색이 검게 변하기도 했지만 , 어려운 고비들은 그 때마다 잘 넘어 갔다.

그 후엔 2∼3개월에 한 번 씩 일반외과 외래에 들러 혈액검사를 받는 일 만이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은 대개 오전 11시경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일이 끝나면 , H씨와 R씨는 나를 초대하여 병원근처의 그럴듯한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이런 광경을 본 병원 직원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 신과장은 미모의 젊은 여인들에 둘러싸여 점심을 먹으러 간다' 고.

이제 H씨는 98년 11월 10일로 5년간의 요주의(要注意)기간이 모두 끝났다. 아무리 지독한 암에 걸렸던 환자라도 수술 후 5년만 지나게 되면 그 암의 재발율은 거의 제로이다. H씨는 더 이상 암환자가 아니다. H씨는 이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천생(天生)을 살 것이다. 신 (神)께서도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고 젖먹이 딸의 장래를 걱정하여 자기 사후(死後)의 일을 자매의 정이 깊은 여동생 R씨에게 부탁한 갸륵한 마음을 가진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귀중한 삶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나는 R 씨에게 ' 형부가 홀아비가 될 것을 기다리지 말고 새로운 결혼상대를 찾아 새 인생을 설계하라' 고 이미 얘기하였다. 언니, 형부, 젖먹이였던 조카딸을 지극히 사랑하여 20대 초반의 꽃같은 5년 세월을 유예시키며 언니를 간호해 준 R씨에게도 신(神)의 은총이 있을 것이리라!


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