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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회화 선생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영어회화를 연습하고 있다. 최근에 외국의 병리학 교수들을 만나야 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에 영어회화 공부가 필요하게 되었다. 지난 3일 전 12일에는 수필을 공부하여 「등단」이라는 즐거운 성취를 하였는데, 영어회화도 영어의 동시통역사 자격획득이라는 또 하나의 성취를, 열심히 하다보면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영어회화에 능숙하게 되려면 여자선생을 잘 만나야 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 남자선생들 보다는 약간은 수다스러운 여자선생들이 훨씬 더 교육적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어느 날 나에게 미국인 여자 영어선생이 우연히 환자로 찾아 왔다. 1976년 2학기에 나는 의대 본과 4학년생이었다. 졸업전 선택과목으로 서울대 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실습생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9월의 어느 날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틈에 젊은 미국인 여자가 눈에 띄였다. 이비인후과 외래담당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배님들은 환자를 진료하느라 정신이 없을 시간이어서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던 내가 아예 그 미국여인을 맡아서 해결하라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영어회화에 입문도 하지 않았을 때라서 "당신 여기에 왜 오셨어요? (Why do you come here?) " 했더니 그 분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미국인에게 처음 말을 걸 때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 May I help you?)"라고 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 당신은 여기에 왜 왔소? , 당장 여기에서 없어져 버리시오! " 라는 뉘앙스가 있는 'Why do you come here?' 라고 첫마디를 꺼냈으니 그 여자는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분을 의사 사무실로 모셔 와서 병원에 오게된 경위를 묻게 되었다. 이름은 재클라인 티베츠(Jacklyne Tibetts), 나이는 27세 (1949년생), 고향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직업은 위생병원옆 SDA 영어학원 강사 , 불편한 사항은 ' 한달 전부터 자주 어지러운 감(dizzy sensation)을 느낀다' 였다. 이비인후과 진찰소견으로는 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진찰실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 교수님들께서 처방해 주시는 약도 별 효과가 없는 듯이 얘기하였다.

재클라인은 토요일 오후마다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고아원에 봉사하러 다닌다고 하면서 나에게 통역(?)을 위하여 같이 다니자고 제의했다. 쾌히 승낙하고 내가 당시 고문으로 있던 의대생 봉사 동아리와 재클라인이 이끌던 고아원 봉사 동아리가 아예 연합하여 일을 하자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 그 연합된 동아리를 중심으로 활동한지 얼마 안되어서 재클라인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 경양식집에 들어가 메뉴를 주문하였는데 재클라인은 그 메뉴에 따라 나온 계란후라이를 먹지 않고 나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라서 동물성 식품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와 어지러움증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도서실에서 문헌을 뒤적이다가 〔 비타민 B 12 부족성 거대세포성 빈혈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환자의 다른 증상으로는 다리 아랫부분에 저릿저릿한 느낌 ( 이상감각증 :paresthesia)이 동반되고 혈액을 현미경으로 보면 적혈구가 간혹 난원형으로 커지는 거대세포가 보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런 구절을 보는 순간 즉시 재클라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로 하는 영어회화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이 때에 비로소 전화영어가 보통의 영어보다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서 전화로도 열심히 영어회화 연습을 하고 있다. 요즈음도 미국에 출장갈 기회가 있으면 호텔에서 전화번호부를 펼쳐 놓고 적당한 백화점에 전화를 걸어 영어회화를 연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시내전화는 무료이다. 그리고 백화점 쇼핑안내소의 여자들은 아무리 떠듬거리는 영어를 말하는 전화 속의 고객에게도 대단히 친절히 응대해 준다.

재클라인에게 전화를 건 다음날 만나서 아래 다리부분에 저릿저릿한 느낌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 피를 뽑아내어 재클라인의 적혈구를 현미경으로 보았다. 난원형의 거대세포가 있음을 보았으나, 나 자신의 판독실력을 믿을 수 없어 그 현미경표본을 그 다음 날 임상병리과 교수님에게 갖고 가서 물어 보았다. 그 교수님께서도 거대세포가 맞는다고 하였으므로 진단은 { 비타민B 12 부족성 거대세포성 빈혈증}으로 확정되었다. 그 후 재클라인의 복용약에는 비타민 B 12 가 추가되었고 계란후라이 정도는 먹고 사는 융통성 있는 채식주의자로 변하게 되었다. 비록 영어회화는 엉터리 초보자였지만 , 의학적 진단은 괜찮은 초보자로 연습삼아 쏘아본 양궁선수의 화살이 과녁을 정확히 맞춘 것에 비유될 수 있겠다.

재클라인의 병은 그 해 크리스마스 경에 완쾌되었다. 완쾌기념으로 나를 자기 집으로 몇몇 동아리회원들과 함께 초대하였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줄 아는 요리를 해 줄텐데 그 요리이름이 ' 피자 ( Pizza)'란다. 나는 피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 먹어 보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그 맛이 희한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탕수육을 처음 먹어 보았을 때 처럼 기가 막혔다. 그 때 쯤 고아원 봉사 동아리는 나날이 번창하여 회원 수가 10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마다 젊은 영어선생님들과 건실한 의대생들의 만남은 서로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었다.

해가 바뀌어 군의관 1년차가 된 나를 면회하러 많은 젊은 영어 선생님들을 이끌고 재클라인은 철원 지역으로 오곤 했다. 철원군 지역에는 겨울에 얼음이 두껍게 얼었기 때문에 겨울철 동안의 한 번 쯤은 고아원 봉사동아리 회원들과 내가 근무하던 부대원 들과 합동 스케이트 대회를 열어 서로의 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군의관 시절에 미국인 영어선생들이 면회를 와 주는 장교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사단본부에 미 8 군 등에서 손님들이 오면 나도 접대를 담당하는 장교로 불려 가서 미군 장교들과 얘기하는 일도 많아 지게 되었다. 군의관 3년차의 전역 6개월 전 쯤 박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 사태가 일어 났다. 10.26 사태가 나자 전방의 모든 부대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외출, 외박, 면회가 금지되었었는데 하필이면 그 시절에 재클라인은 미국으로 가야만 하는 사정이 생겼다고 편지만 남겨 놓고 미국으로 돌아 갔다. 몇 번 쯤은 편지 왕래가 있었으나 결국엔 소식이 끊어 졌다. 또한 고아원 봉사 동아리도 명맥만 겨우 유지되다가 점점 활동이 시들해져 버렸다.

그 후 나에게는 여러 번의 외국여행의 기회가 있었는데 영어가 통하는 지역에 가면 별 불편이 없다. 90년에는 아내와 단 둘이만 하와이로 구혼여행(舊婚旅行)을 갔었는데 하와이에서도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관광을 즐겨서 많은 경비를 줄일 수 있었다. 결국 환자로 찾아 온 미국인 영어강사 재클라인과 'Why do you come here?' 라고 말하며 병원에서 쫓아내려 했던 나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지금 정도의 영어회화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 인연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었다.

요즈음도 우리 병원을 찾아 주는 외국인들을 위하여 영어통역의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다. 또한 나는 요즈음 30세의 김 선생이라는 젊은 남자 영어 동시통역사 선생을 일 주일에 한 번 씩 만나 나의 혀와 입술에 기름칠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나도 그처럼 영어를 듣자마자 한국어가 나오고 한국어를 듣자 마자 영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 그 나이에 뭘 그리 열심히 하느냐?' 고 만류도 하지만 나는 영어 동시통역사를 향해서도 꾸준히 노력해 볼 것이다. 그리고 한 때엔 영어회화선생님,또 한 때는 친구였던 재클라인이라는 잊을 수 없는 환자를 생각하면서-----. ( 12월 22일에 완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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