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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에서 당한 나의 손가락 골절상

새로 시도되는 업무나 기술을 개발한 후, 그에 대한 결과가 좋아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의 기쁨은 상당히 크다. 이 기쁜 감정을 성취감(成就感)이라 한다. 어찌 보면 인생이라는 것은 새로운 성취감을 향하여 부단히 노력해 가는 과정이라 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나에게는 수필문학계에 등단이라는 즐거운 성취가 있었다. 또한 이번에 다가오는 겨울에는 스키장의 상급 슬로우프를 멋있게 활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 이에 대한 성취감을 맛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지난 겨울 나는 상급 슬로우프에서 멋진 활강을 하려고 했으나 좌절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나는 스키장에 간다. 스키장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는 적도 있고 스키연합회의 고문의사로 가는 경우도 있다. 스키장에 가면 각 슬로우프마다 '초급', '중급', '상급' 및 '최상급'의 난이도 급이 표시되어 있다. 각 슬로우프의 난이도에 스키어들의 실력을 맞추어서 부상을 당하지 않으면서 슬로우프-활강의 쾌감을 즐기라는 스키장 운영자측에서 하는 무언의 권고인 셈이다.

환자를 수술하는데 있어서도 '초급', '중급', '상급' 및 '최상급'의 급이 있다. 그래서 어떤 병원이 최상급에 해당되는 초정밀수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면 의료보험의 돈을 관리하는 당국에서 결정하는 '3차의료기관 지정취소' 와 같은 수모를 당할 수도 있겠다. 최상급에 해당되는 초정밀수술에는 심장이식수술이나 간이식수술 , 붙어 있는 쌍둥이의 분리수술 등이 해당된다. 현재 심장이식수술은 우리병원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간이식수술은 여러번 시술되었다. 이 간이식수술에는 약 50명의 인력이 동원된다. 이 간이식수술팀에서의 내 역할은 해부병리 담당의사인데 , 이 업무가 계속될 때는 나는 사무실에서 자고 먹고 하면서 즐겁게 일을 수행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은 장기제공자의 간에「 병이 있는가?, 없는가?」 를 판단할 때이다.

만일 수술팀의 실력이 중급밖에 되지 않는데 상급의 난이도가 있는 수술을 무모하게 시도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일 것이다. 나는 지난 겨울 (98년 1월 25일 )에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S 스키장에서 내 자신의 스키 실력은 중급이었지만 상급 슬로우프에 도전하는 테스트를 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또 한 번의 실패였다. 더구나 넘어지면서 손가락 골절상까지 입고 말았다.

나는 「생활체육 전국 스키 연합회」의 고문의사이다. 그래서 매년 겨울 이 단체가 주최하는 스키대회가 열리면 나도 스키장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스키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운영본부의 임원복(任員服)을 입고 다니거나, 고문의사의 명찰을 달고 다니면 스키장의 모든 시설을 마음대로 이용하여도 좋다고 허락받는다. 대회가 끝나면 고문의사로서 일한 수당도 받아 오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고 무엇이랴 ! 그렇지만 나는 되도록 대회운영본부의 자금을 아껴 주려고 나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한다. 사치라고 생각되는 술집에 가는 것이나 나이트 클럽에 가는 것 등의 소비는 자제하기 때문이다.

고문의사로서의 의무(義務)도 있어서 그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가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즉시 달려가 가장 좋은 치료방침을 제시해 줘야 한다. 그래서 스키장내에서만 통화되는 단거리 무선전화와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핸드폰이나 삐삐 중 어떤 것에 의해서라도 연락이 오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즉시 달려간다. 미국에서는 EMT(Emergency Medicine Technician:응급의학 의료기사)라고 불리우는 직업인이 있는데 , 이 사람들은 사고 현장에서 종합병원 응급실까지 환자를 잘 보호하며 옮겨 주는 것을 전공으로 하는 의료기사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들을 응급구조사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응급구조사가 되려면 각 보건전문대학에서 2년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스키장에 고문의사로 갈 때의 주 역할이 응급구조사의 역할이기 때문에 때문에 나는 가방에 「스키장에서의 응급처치 」의 단원이 들어 있는 응급의학 교과서를 갖고 가서 틈틈이 정독(精讀)을 한다.

매년 2∼3일 동안 스키연합회의 임원들과 생활을 하였기에 이 글을 쓰는 98년 11월 에는 스키실력이 중급으로 올라가 있다. 무료로 국내 최고수준의 스키코치들의 개인지도를 받고 있으니 일석삼조 (一石三鳥)가 되겠다.

스키연합회의 고문의사가 된 것은 장결핵 환자였던 K씨의 남편인 L씨가 스키연합회의 전무이사로 발탁되고 난 후부터이다. L전무이사는 아들녀석의 스키코치였던 연유로 알게 되었는데 , 만나던 중에 L 전무이사는 '아내가 점점 마른다'고 진찰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 며칠 후 (1992년 6월 23일 ) K씨( 당시 만 34세, 1958년생)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순간 ' 어쩌면 저렇게 마를 때까지 가만히 있었을까?' 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의 놀라는 표정이나 언행이 생기면 K씨가 기분나빠 할까 보아서 나는 좀 더 조심하였다. 당시 K 씨는 키가 160cm 였는데 ,체중은 32 kg밖에 되지 않았다. 체중이 이렇게 많이 줄어 드는 병들을 통틀어서 「만성소모성 질환 ( chronic debilitating disease)」이라 부른다. 이 질환군(疾患群)을 구성하는 병에는 대표적으로 암과 결핵이 있다.

내과의 P 박사에게 K씨를 의뢰하였다. P 박사는 각종의 검사, 엑스선 검사 , 내시경검사 , CT 등을 거친 후 '장결핵(腸結核)'으로 결론을 내렸다. 암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 후 일년동안 장결핵약을 복용하여서 거의 완쾌단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98년 11월에는 완전한 정상인이 되어 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이젠 미모를 자랑하는 중년여성이 되었다. 체중이 한 때는 60kg 까지 불었으나 , 적절히 식사량을 조절하고 산책과 같이 힘들지 않는 운동을 하여서 이젠 54 kg 정도의 날씬한 여성이 되어 있다. 그런데 K씨는 언제부터인가 팔당에 있는 토종닭을 삶아 내어주는 식당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가끔 K씨가 생각나면 손님들과 함께 팔당의 K 씨의 식당으로 가곤 한다. 그 닭집에서는 먹는 즐거움보다는 경치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 그 경치를 감상하며 한가한 시간을 가져 써 가고 있는 수필의 구절을 생각해 내곤 한다. 그 닭백숙의 값도 나에게는 특별한 염가(廉價)이어서 일석사조(一夕四鳥)가 되겠다.

98년 1월 25일(일요일) 오후였다. S 스키장에서 스키대회의 행사의 일정이 시상식을 끝으로 모두 끝난 후, 나에게는 스키를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자유시간이 되었다. 나는 스키실력이 중급임에도 불구하고 상급의 슬로우프에 도전해 보리라 마음 먹고 상급 슬로우프로 향하는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개척을 앞둔 탐험가와 같은 마음이었다. 리프트에서 내려서 상급 슬로우프의 출발지점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도저히 잘 해 낼 자신이 없었다. 잠시 생각한 다음 경사가 급하지 않아 약간은 쉬워 보이는 아랫부분의 슬로우프에서만 스키를 타기로 결정하였다. 스키를 떼어내서 어깨에 메고 부츠만 신은 발로 딴 스키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장자리로 걸어 내려 왔다. 중간 쯤부터 다시 스키를 장착하고 활강하여 내려오는 동안 불행하게도 도중에 넘어지고 말았다. 더구나 , 넘어지면서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중간마디뼈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 후 한 달간은 손가락 기브스를 한 채로 글을 써야만 했다.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손가락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상급 슬로우프를 즐길 수 있도록 스키에 관한 연구와 훈련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마음을 먹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 현재 하지 못하고 있는 최상급의 어려운 수술도 시도해 보려면 그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동물실험 , 다른 병원에 견학가는 것 등을 하도록 해야겠다. 나도 솔선수범하며 다른 병원직원들을 독려(督勵)해야겠다.

손가락 기브스를 풀고 나서, 나는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의 구절을 생각하며, 오늘도 나와 관계된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성취감을 맛보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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