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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와 골게터

축구시합을 하거나 볼 때마다 생각나는 환자가 있다. 인생의 낭떠러지의 마지막 가장자리까지 갔다가 잘 소생되어 완전 정상인이 된 C씨이다. 이는 골인을 당하려 했던 순간 골키퍼가 잘 막아내어 이 공을 즉시 멀리 있는 골게터에게 연결시켜 상대방 골문에 골인 시킨 것과 비슷하다.

나는 축구시합을 좋아 한다. 축구시합을 더욱 좋아하게 된 것은 병원에 과장이 된 후 직원 야유회를 갈 때마다 직원들을 모두 즐기게 하기 위하여는 축구가 가장 좋은 종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유회를 계획할 때는 그 곳에 축구장이 있는가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일단 축구장에 가면 남녀 혼성으로 대개 20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양 팀으로 나뉘어 진다. 나는 우리 팀의 최종 골 게터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우리 팀의 주장 겸 코치의 역할도 겸하게 된다. 이 코치의 역할을 하다 보면 번번이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 다음날엔 대개 목이 쉬어 고생하게 된다.

병원의 병리과 과원들로 구성된 축구팀의 멤버들은 평소에 연습할 기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승부가 의미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내가 끼어 있는 팀이 이기는 날에는 그 날은 온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 더구나 내가 골게터가 되어 결승점을 만들었을 때에는 나이를 잊어 버린다. 내 나이가 15살 쯤 된 것처럼 착각하여 TV 에 비쳐지는 골게터들의 골인 후의 제스처를 나도 비슷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끼어 있는 팀의 승리를 이끌기 위하여 우리 팀에게 작전을 지시할 때의 요점은 네가지 이다. 첫째,항상 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라 둘째, 우리편 선수가 어디에 있는지 보고 그 사람에게 이름을 부르든지 하여 공이 간다는 사인을 보내고 재빨리 공를 주어라. 셋째 우리팀이 보이지 않을 때는 무조건 앞으로 보내라. 넷째 상대편 골문 근처에서는 무조건 슛이다. 그래서 나는 축구장에서 뛰면서 공을 받을 사람의 이름과 '앞으로' 와 ' 무조건 슛'을 여러 번 큰 소리를 지르다 보면 습관적으로 목이 쉬게 된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시합하다 보면 그에 대한 보답도 있어서 내가 끼인 팀의 승리 확률이 높아져 있다.

축구시합에서 승리를 하려면 11명의 선수가 모두 열심히 뛰어야 하고 , 골키퍼가 막아낸 공이 미드필더에게 정확히 전해 져야 하고 그 후 공격수가 상대편 진영 깊숙한 곳까지 공을 잘 몰고 가서 골문 쪽으로 센터링을 잘 해야 하고 ,골게터는 상대편 골키퍼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헤딩슛이나 강슛을 하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골키퍼--->미드필더--->공격수--->골게터로 연결되는 과정이 착착 맞아 떨어지면 득점이 되는 것이다.

큰 종합병원을 축구팀에 비유하여 보면 골키퍼에 해당되는 의사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다. 응급실에 들이 닥치는 환자들은 각양각색이라서 전혀 예측이 안되는 것과 같이 골키퍼는 우리 측 골문에 어떤 공이 날아올지 몰라 항상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골키퍼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대편의 강슛처럼 응급실에 온 환자의 상태가 너무 위중하면 응급의학전문의들도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 대개는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운명된 사람들인데 이런 환자를 병원직원들은 'DOA' 라고 말한다. 이는 Death on arrival 의 준말이다. DOA 환자를 제외한 모든 환자는 도착과 동시에 환자가 소생 (蘇生)되도록 의사는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대개는 소생술을 시행하는데 이 중의 대표적인 소생술이 심폐소생술이다. 이는 의대 교육과정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환자 소생과 관계되는 응급치료에는 순서가 있는데 이를 ABC 로 줄여서 말한다. A는 Airway의 첫글자로 기도(氣道)를 뜻한다. 즉 환자가 숨을 잘 쉬게 해 줘야 한다. B 는 Bleeding 을 뜻하는 것으로 출혈(出血)부위에 대한 치료를 숨쉬는 것 다음으로 잘 하여야 한다. 또한 C는 Circulation을 뜻하는 것으로 순환 (循環)을 일컫는 것인데 환자 몸 속의 혈액순환은 생명유지에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축구시합에서는 골키퍼에게 ' 공이 이 방향의 이 속도로 날아 올 테니 이렇게 받아 내시오' 라고 코치가 예견을 하고 , 또 그렇게 공격팀의 공이 날아 온다면 골키퍼는 '싱겁다' 할 것이다. 그러나 간혹 응급실에서는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현장에 있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응급실 당직의사에게 예고를 해 준다면, 주치의는 그 환자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생(蘇生)하는 쪽으로 가게 하는 결정적인 방향타를 잡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간다고 들 떠 있었던 8월 4일 (월요일) 오후였다. 근처의 큰 병원에서 근무하는 친하게 지내는 K 여의사로 부터 급박한 전화가 왔다. K 선생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내용은 ' 손아래 시누이의 남편인 C씨( 당시 만 53세, 1944년생)가 갑자기 쓰러져 인천시 주안동의 조그만 병원으로부터 구급차를 타고 강동성심병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으니 잘 보살펴 달라' 이었다. ' 알겠습니다' 고 한 후 응급의학과 J과장과 신경외과 O과장에게 퇴근하지 말고 C 씨를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는 골키퍼와 골게터에게 공이 갈 테니 잘 준비하고 있으라고 사인이 보내어진 것과 비슷하다.

구급차에 동승하고 오는 인턴선생과 계속 통화를 하게 되었다. 당시의 의식상태, 혈압, 맥박 , 호흡상태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구급차가 달려 오고 있는 동안 나는 K 선생님과 평소의 C씨의 상태에 관하여 통화할 수 있었다 . 평소에 200/150 mmHg 정도의 고혈압이 있어 그에 대한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 다른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고 하였다. 응급실 도착전의 C씨의 잠정적인 진단은 「 고혈압성 질환에 의한 뇌내 출혈 」이었다. 이는 코너킥의 자리에서 바나나킥과 같은 강력한 슛의 공이 날아올테니 골키퍼는 그에 대한 대처를 하고 있어라는 사인이 온 것과 비슷하다.

응급실 도착과 동시에 응급의학과장은 응급처치를 더욱 철저히 하였고 CT를 촬영한 바, 「 양측 측뇌실 (側腦室)내의 출혈」이었다. 준비된 집도의 O 과장은 즉시 수술실로 환자를 데리고 들어 갔다. 뇌실에 튜브를 삽입하고 이 튜브를 통하여 출혈된 피가 몸 밖으로 흘러 나오게 하는 수술이었다. 그 후 중환자실에서 여러 날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C 씨는 사경(死境)을 헤매었다. 호흡이 멈추면 인공호흡을 시켰고 , 뇌내에 또 출혈이 생기면 튜브를 통하여 잘 빠져 나오게 음압(陰壓)을 걸어 주었고, 지혈제를 투여하고, 출혈로 인한 빈혈이 생기면 수혈을 해 주었다. 이런 기간이 약 3주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치료를 계속한 바,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의식이 좋아져 그 날이 며칠인지, 이 병원이 어디인지도 모르던 C 씨는 차츰 자기가 여기 까지 오게된 경위를 알게 되었다. 수술후 약 2개월이 지난 후 ( 10월 20일 ) C 씨는 퇴원하여, 이 글을 쓰는 98년 9월에는 완전한 정상인이다.

C 씨의 과정을 축구시합으로 비유하여 정리해 보자. 「 예상했던 대로 상대팀의 강슛은 왼쪽 코너킥 위치 부근에서 바나나킥과 비슷한 선을 그리며 골문 중앙의 높은 부분으로 들어 왔다. 이를 적절히 받아낸 골키퍼는 이 공을 상대편 진영 깊숙이 포진하고 있었던 골게터에게 재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패스하였다 . 골게터는 평소에 늘 연습했던 대로 상대편 골키퍼가 미치지 못하는 구석으로 강슛을 하여 축구공은 골인 되었다. 이 골인의 쾌감은 우리 축구팀의 사기를 충천하는 것 처럼 올려 주었다. 」

그 후, 나는 축구경기를 볼 때마다 DOA 의 한 순간 직전에 응급실에 도착된 후, 극적으로 소생되어 이젠 완전히 정상인이 된 C 씨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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