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is responsive to your Click


INDEX

인천상륙작전

9월 15일에는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과 함께 생각나는 환자가 하나 있다. 친구 C군의 부인 H 씨이다. 이 H 씨를 완쾌시키는데 있어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의들이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군사작전 중 가장 어렵다는 상륙작전에 비유될 수 있다.

1950년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된 날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당시의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에 의해서 지휘된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장(章)이다.

당시의 인천상륙작전을 인체의 수술로 비교해 보자. 우리 남한을 인체라 한다면 서울은 뇌이며,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당하고 있던 상태는 뇌에 종양이 생겨있던 병적인 상태라 할 수 있고 , 맥아더 장군은 남한이라는 환자의 치료를 총지휘하던 의사라고 할 수 있겠다.

맥아더 장군이 1950년 7월 초 이 작전을 계획할 때부터 9월 15일 상륙이 개시될 때까지 많은 군인들이 맥아더 장군의 뜻을 받들어 전략을 수행한 일련의 과정을 살펴 보자. 인천상륙작전은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 후 즉 7월 초에, 맥아더 장군은 그의 참모장인 알몬드 소장에게 '서울의 적 병참선 중심부를 타격하기 위한 상륙작전계획을 고려하고 상륙지점을 연구하라 '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지시는 '블루 하트' 라는 암호명칭의 계획으로 발전되는데 , 연구를 담당한 '합동전략기획 및 작전단(JSPOG)'은 북한군의 병참선을 끊기 위하여 인천, 군산, 해주, 진남포, 원산, 주문진을 상륙대상지역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인천(100-B안), 군산(100-C안),주문진(100-D안)의 3개 안으로 압축되어 7월 23일 미국 극동군 사령부의 참모부에 회부되었다. 여기에서 인천을 상륙지역으로 하는 계획이 결정되었다.

뇌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계획할 때, 뇌에 수술용 칼(메스)이 접근하기 위한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앞부분의 두개골(전두골)을 뚫는 법 , 옆부분(측두골), 뒷부분(후두골) , 윗부분( 두정골) 및 콧구멍을 통하여 접근하는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어쨋든 서울에 생겨 있는 뇌종양을 제거하기 위하여 최단거리의 인천으로 상륙지점을 결정한 것은 의학적으로는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 7월 23일 부터 9월 15일 까지는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우선 돌격 상륙부대로 미 제 1 해병사단이 임명되어 7월 25일 스미스 소장이 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점령부대로는 미 보병 제 7사단이 임명되었고 , 여기에 국군 제 1 연대가 제주도에서 결성되어 합류할 임무가 부여되었다. 또한 국군 보병 제 17연대는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 중 임무변경으로 부산으로 이동되어 인천으로 이동할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수술시에 집도의사와 함께 일할 마취의사, 해부병리의사 , 제1조수의사, 및 스크럽 간호사가 임명된 격이다. 스크럽 간호사는 수술기구를 집도의의 손에 척척 전해 주는 간호사를 말한다.

결국 상륙 부대는 해군을 포함하여 총 칠 만 명의 대병력이 맥아더 장군의 작전명령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무사히 인천에 상륙할 수 있었다. 그 후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9월 28일 중앙청에 국군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이를 계기로 국군이 압록강변 초산까지 북진할 수 있었다.

한 평범한 의사를 맥아더 장군과 같이 위대한 장군에 비교하는 것은 너무도 외람스럽다. 그러나, 나는 친구의 부인 H 씨의 진단과 치료과정에서는 맥아더 장군처럼 방사선학적 진단, 수술, 마취, 수술후 집중치료, 병리학적진단, 일반 병실 입원치료, 및 통원치료에 있어서 여러 전문의 들에게 적시(適時)에 부탁한 경험이 작년 ()에 있다.

H 씨는 38세의 여자로 수술하기 일 년 전부터 '자주 메슥거린다. 소화가 잘 안 된다. 가끔 토한다' 고 하여 내 사무실을 여러 번 찾아 왔다. 나는 흔해 빠진 소화불량증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늘 소화기내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부탁했다. 위장에 대한 내시경검사, 엑스-선 검사를 여러 번 해 보았으나 번번이 '별 이상이 없다' 였다. 그러던 어느날 H 씨는 '눈이 어른 거린다' 고 호소했다. 나는 안과전문의에게 진료를 부탁했다. 안과전문의인 L박사는 ' 안구 뒤의 뇌에 발생한 종양이다' 라는 진단을 내었다. 신경외과 과장인 O 박사에게 다시 부탁하였다. 모든 자료를 검토한 후 수술하기로 결정하였다. '어느 쪽의 두개골을 떼어 내고 뇌로 접근할 것인가' 를 검토한 후에 앞 이마쪽의 머리카락이 잘 나있는 부분을 절개하고 뇌에 접근하기로 하였다. 말하자면 이마쪽의 두개골(전두골)이 인천상륙작전의 상륙지점인 월미도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종양의 크기가 직경 7 cm로 상당히 컸기 때문에 생명을 거는 수술이었다. 수술 전날 H 씨는 나와 신경외과 의사들에게 ' 잘 부탁한다'고 하였다. H 씨의 수술시 마취를 담당할 의사는 K 박사였는데, '걱정마라' 하여 내 마음도 든든하였다.

입원으로부터 수술까지 일 주일이 소요되었다. 여러 방사선학적 검사와 마취전 검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술하는 날, 수술은 미리 짜 놓았던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고 , 수술후 최종 진단은 접형골 뇌막에서 발생한 뇌수막종이었다. 수술후 치료도 별 문제 없어서 수술 후 약 두 달 동안 입원한 후 퇴원하였다. 이글을 쓰는 9월 에도 별 이상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 '자꾸 토하기도 한다' 라고 호소했을 때 여러번 복부 엑스-선 검사만 할 것이 아니라 뇌 CT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자주 토하는 사람들의 천 명 중의 한 사람은 뇌종양환자 이기 때문이다. H 씨의 병명이 뇌수막종이라는 양성종양이라서 생명을 잃지 않은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악성종양이었더라면 치료시기를 놓쳐 친구 C 군을 홀아비로 만들 뻔 했다. 어쨋든 H 씨의 진료에 참여한 의사들은 소화기내과, 안과, 신경외과 , 마취과, 해부병리과, 진단방사선과 전문의들이었다. 이 전문의들이 이끄는 팀 들의 전공의, 수련의, 간호사, 방사선사, 병리사들의 연인원을 다 합하면 이백명은 될 것이다. H씨의 생명을 건지기 위한 이 이백명은 인천상륙작전의 칠 만명과도 비교될 수 있는 숫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시의 맥아더 장군은 70세 였다. 아무리 역전의 노장인 맥아더 장군도 1950년 9월 15일 새벽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7월 초부터 70여 일을 계획한 작전계획에 상륙부대원 칠 만 명의 생명이 자기의 지휘하에 달려 있을 때, 아마 맥아더 장군은 신 (神)에게 기도 하였을 것이다. 나도 한 환자의 생사가 갈려지는 큰 일을 치루어 낼 때마다 신(神)에게 기도하고 있다.

매년 9월 15일엔 나는 뇌수막종이란 병에서 건져내어진 H 씨와 더불어 맥아더 장군을 생각할 것이다.


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