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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韓中修交)

매년 8월 24일 한중수교기념일이 되면 생각나는 환자가 하나있다. 방 박사이다. 이 글을 쓰는 때가 8월 하순이니까 약 6년전의 일이다. 1992년 7월 초 방 박사를 알게 되었다. 방 박사는 만 36세(1956년생)의 노총각인데 1992년 2월에 대만 모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방 박사는 1985년에 대만으로 건너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금의환향( 錦衣還鄕 )한 대표적인 젊은 박사였다. 방 박사가 나와 만나게 된 것은 방 박사의 형인 J 씨가 내 친구 Y 군과 친하기 때문이다. Y 군은 나와 중학교 동창인데 김 영삼 전대통령을 무척 좋아하여 70년대 후반 20대부터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이다. 방 박사는 자기 친형인 J 씨 보다 Y군을 더 좋아하여 J 씨는 그점만은 동생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 박사와 Y 군은 일찍부터 정치에 대한 야심이 강하여 똘똘 뭉쳐 있었다.

85년에 방 박사는 대만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고 했다. 한국 외국어대 중문과 졸업생인 방 박사는 YS 당에서 미래의 중국통 인사로 지명되어 대만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오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92년 7월 초 방 박사를 처음 보았을 때 ' 웬지 환자 같은 느낌이 온다 ' 는 인상이 있었으나 , 방 박사가 듣기 싫을까 보아서 나는 이에 대한 말끝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7월 말 쯤 , 방 박사가 ' 자꾸 소화가 잘 안된다. 소화제 복용량이 자꾸 많아 진다 ' 고 하면서 진찰해 달라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안색 (顔色) 이 웬지 환자 같았기 때문에 이왕이면 입원해서 종합검진 해 보는게 좋을 것같다고 입원을 권하였다. 방 박사도 그 편이 좋겠다고 응낙하고 이삼일 후에 입원하였다.

입원하여 위 엑스-선 검사, 위내시경 검사를 해 보니 심히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진단명은 진행성 위암이었다. 며칠 뒤 수술이나 해보자 하여 수술을 시작하였으나,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수술을 하려 복벽(腹壁)을 열어 본 바, 위암세포들이 위(胃)에 만든 주종괴(主腫塊: main mass)외에 간 , 복막과 비장에 많은 위성종괴(衛星腫塊: satellite mass)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경우 일반외과 의사들은 O & C procedure 를 한다고 흔히 말한다. 열었다가 닫는다고 Open and Closure procedure 를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그 후 방 박사는 나날이 야위어 갔다. 처음 만날 때 170 cm 의 키에 55kg 이던 것이 자꾸 줄어 마지막엔 38kg 까지 되었다. 무언가 먹으면 피가 섞여 토해 내었다.통증이 올 때마다 몰핀과 같은 강력한 진통제를 놓아 주어야 했다. 영양실조증이 심해지면 고단위 수액제제로 보충하곤 했다. 방 박사는 환자복을 입은 채로 내 사무실에 와서 자기 뱃 속의 상태를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암이 절대로 아니니 걱정말고 담당의료진의 치료방침에 적극 따르라'고 시치미를 딱 떼었다. 열심히 치료하면 낫는 병이니 희망을 갖으라고 했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공식적으로 수교 ( 修交) 되었다. 중국대사관에 게양되었던 대만기는 내려지고 대신 오성홍기가 올려 졌다. 방 박사는 매우 즐거워 했다. 방 박사가 예측한대로 한국과 그당시의 중공이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어 중공이라는 호칭은 없어지고 중국이라는 국호를 쓰기로 공식방침을 결정한 것이다. 방 박사가 꿈꾸던 중국 북경에서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미래의 문이 열렸다고 기뻐했다. 당시 김 영삼 야당총재가 대통령에 오르기만 한다면 방 박사는 외무부에서 중국통 고위 공무원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92년 9월이 되면서 방 박사는 더 야위어 갔고 내 사무실에 와서 자기는 못 고칠 병이 아니냐고 하면서 자기 병의 진실을 말해달라고 채근했다. 그 무렵엔 방 박사는 다리에 힘이 없어져 보호자들이 밀어 주는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나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라고 얘기해 주었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 내 길지 않은 경험에 의하면 암 환자 본인이 죽을 병에 걸린 것을 알아차리면 그 시점이 사망시점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다시 건강해 질 수 있다는 ' 꿈과 희망'이 전혀 없다면 살 의욕을 잃고만다. 살 의욕을 잃게 되면 밥맛이 없어 지고 , 밥맛이 없어지면 야위어 가고, 야위어 가서 영양실조성 악액질성체액이 나타나면 결국 사망하는 환자를 여러번 보았기 때문이다.

92년 10월 방 박사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서 진통제와 영양제로 겨우 연명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정신은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친형인 J 씨가 방 박사를 기도원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기도원에 가서 마지막 기적을 바라겠노라고-------. 이에 나는 적극 찬성하여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J 씨로 부터 온 연락은 방 박사가 나를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사를 제쳐 두고 기도원으로 달려 갔지만 아쉽게도 방 박사는 이미 3시간 전에 운명한 뒤였다. 92년 10월 26일 오후였다. J씨의 말에 의하면 마지막 까지 기적이 일어나 살아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십자가를 가슴에 품은 채로 운명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방 박사가 20대 초반 시절에 그렇게 열렬히 반대투쟁을 했던 박대통령과 같은 날에 사망한 것은 묘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한다.

그 후 93년 2월 25일 김 영삼 대통령이 취임 할 때 방 박사가 간절히 생각났고, 가끔 '중국과의 무역역조' 등의 신문기사가 나오면 방 박사가 생각난다.

진행성위암세포와 인간정상세포와의 싸움에서는 왜 인간정상세포가 백전백패일까? 한국인 성인 남자의 암사망원인 1위인 위암 . 그 위암의 정체를 더욱 자세히 밝히고 위암세포의 약점(弱點)을 찾아내기 위하여 오늘도 최신의학의 여러 서적과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다. 위암과 투쟁하고 있는 환자들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위암을 연구하는 의사들에게 지혜가 생겨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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